묵은해는 가고 새해가 밝았네요. 부산 해운대, 강릉 정동진, 성산 일출봉 등 전국 해돋이 명소에 100만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죠.

불끈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두 손을 모아 새해 소망을 기원했겠죠. 흑룡의 해라, 더 승천하는 흑룡의 기상을 가슴에 담으려고 그런 듯 싶네요. 새해가 오기 전 저녁나절부터 밤새 내린 눈은 온 세상을 하얀 나라로 만들었어요. 어느 해 눈 쌓인 모악산 산행을 그려보며 설경이 잔뜩 기대되었죠.

상학마을 모악산 입구 로터리에 모여 신발에 아이젠을 채우고 장갑도 끼고 모자도 쓰고 스틱도 펴는 등 단단히 채비를 하였습니다.
대원사 가는 길로 가다 안내판을 따라 왼쪽 방향의 천일암 가는 길로 올라갔네요. 천일암에서 잠깐 쉬었다가 800여m나 되는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 KBS 송신소와 부대 좌측에 있는 남쪽봉우리 헬기장으로 갔습니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예보와는 달리 산행하기에는 최상의 날씨라 다행이었습니다. 길도 눈이 쌓인 그대로라 걷기에 너무 신이 났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빠드득 빠드득’ 소리는 마치 악보의 악상부호를 지켜 부르는 노래 같아 환상적이었답니다. 온 산은 하얀 솜이불을 덮고 지난해의

상처를 감싸주고,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라고 속삭이는 게 아닌가요? 나뭇가지에 내린 눈은 칼바람이 심술을 부렸는지 얼음 옷만 입고 눈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해 아쉬웠네요.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한두 번의 오르막길은 힘이 듭니다. 모악산은 794m로 만만하지 않은 산이죠. 그런데 쌓인 눈이 능선을 오르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더라구요. 산행을 하며 나름대로 터득한 산행의 길라잡이가 있답니다. 정상을 마음에 품고 조금 앞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한다는 거죠.

금산사 쪽으로 내려올 때가 더 장관이었습니다. 쉰길바위를 지나 능선을 내려오다 장근재에서 모악정이 있는 오른쪽 길로 발을 돌리니 아무도 걷지 않아 소복소복 쌓인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찾았습니다. 모악산은 누구랑 언제 와도 명산입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하얀 산을 오르내리며 저만의 소박한 꿈을 꾼 것만으로도 행복했답니다.